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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사전/일본어노래가사

나카모리아키나 - 난파선 나카모리아키나의 실연노래 가사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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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かがなんて 忘れればいい

그깟 사랑따윈 잊어 버리는 게 좋아.

 

泣きたいだけ 泣いたら

울고 싶은 만큼 울어버리면

 

目の前に違うの愛が

눈 앞에 새로운 사랑이

 

見えてくるかもしれないと

보일지도 모르지요

 

そんながりを 言ってみせるのは

강한척하는것은 

 

あなたを忘れるため

당신을 잊기 위해서예요

 

さびしすぎて こわれそうなの

너무 외로워서 부서질 것 같아요

 

私は愛の難破船

나는 사랑의 난파선이에요

 

折れた翼 ひろげたまま

부러진 날개를 펼친 채

 

あなたの上に 落ちて行きたい

당신의 위에서 떨어지고 싶어요

 

海の底へ 沈んだなら

바다 깊은곳으로 가라앉게 되면

 

泣きたいだけ 抱いてほしい

울고싶은만큼 안아주길바래요

 

ほかの誰かを 愛したなら

다른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追いかけては 行けない

쫓아가지는 않겠어요

 

みじめな 戀 つづけるより

비참한 사랑을 계속하는 것 보다

 

別れの苦しさ えらぶわ

이별의 괴로움을 선택하겠어요

 

そんなひとことで ふりむきもせず

그 한마디뿐 뒤돌아 보지 않고

 

別れたあの朝には

헤어진 그 아침은

 

この淋しさ 知りもしない

이 외로움 느껴지지도 않아

 

私は愛の難破船

나는 사랑의 난파선

 

おろかだよと 笑われても

어리석다고 비웃어도

 

あなたを追いかけ 抱きしめたい

당신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었어요

 

つむじ風に 身をまかせて

회오리바람에 몸을 맡긴 채

 

あなたを海に 沈めたい

당신을 바다에 빠뜨리고 싶어

 

あなたに逢えない この街を

당신이없는 이 거리를

 

こんな夜 ひとり 步いた

오늘밤에 혼자 걸었어

 

誰もかれも 知らんぶりで

누구도 모른채 하며 

 

無口なまま 通りすぎる

아무 말없이 지나쳐 가요

 

たかが戀人を なくしただけで

겨우 애인을 잃은 것 만으로

 

何もかも 消えたわ

전부 다 사라졌어요

 

ひとりぼっち 誰もいない

나홀로 아무도 없어요

 

私は愛の難破船

나는 사랑의 난파선

 

일본만화에서 자꾸 저런 가녀린 선의 여자가 그려져서 왜케 현실이랑 동떨어졌나 했더니..

만화 그대로 이네요.

마츠다세이코와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져 팬덤이 각각있을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있는 일본의 여가수인데요.

 

특유의 허스키함과 눈빛이 정말 한번보면 잊을수가없어요.

대표적인 노래하면 정말 부셔질듯이 눈물그렁그렁하면서 부르는 난파선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네요.

 

 

 

 

본명
나카모리 아키나 (中森 明菜なかもり あきな, Akina Nakamori)
출생
1965년 7월 13일 (55세)
국적
일본 일본 
신체
160cm | A형
직업
가수,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 배우
학력
메이지대학 부속 나카노 고등학교 (중퇴)
데뷔
1982년 5월 1일 싱글 スローモーション(슬로 모션)

마츠다 세이코와 함께 1980년대 일본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데뷔 이래 현재까지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아티스트들 중 하나로 일본 레코드 대상,
 FNS가요제 여성 최초 2연패, 오리콘 연간 아티스트별 토탈 세일즈 선두 횟수 역대 2위(4회)
솔로 1위, 더 베스트 텐 최다 1위 (69회) 등 수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2020년 기준). 
2010년 이후, 건강 악화로 활동을 무기한 정지하였으나, 2014년 홍백가합전에서 
복귀 무대를 가지고 이듬해 1월 신규 싱글과 커버 앨범으로 완전 복귀하였다. 2020년 현재 총 판매량은 약 2568만장.

데뷔 싱글 '슬로 모션'은 가련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발라드로, 아키나 본인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곡임에도 
오리콘 주간 차트 30위가 최고 성적일 정도로 반응이 대단하지는 못했다. 이후 츳파리(つっぱり), 
즉 불량소녀 이미지가 가득한 두번째 싱글 '소녀A'를 통해 오리콘 주간 차트 5위에 오르고 더 베스트 텐
 이나 밤의 히트 스튜디오와 같은 공중파 음악방송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뒤이은 세번째 싱글 '세컨드 러브'는 첫 싱글처럼 다시 가련하고 청순한 발라드로 회귀한 곡이었는데, 
이 곡이 오리콘 주간 차트 6주 1위(3주 연속 1위 2회), 1983년 연간 차트 8위에 오르는 대단한 성적을 기록하고,
 약 77만장을 판매해 나카모리 아키나 역대 최고의 판매실적을 올린 싱글로써 대히트하였다. 
네번째 싱글 '1/2의 신화'에서는 또다시 츳파리 노선으로 돌아와 오리콘 주간 차트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발라드인 '트와일라잇 ~석양의 편지~' 2위를 기록하고, 
츳파리로 돌아온 금구가 또 한 번 대박을 치면서 다시 1위를 탈환하며 1983년 홍백가합전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이 기세를 몰아 1984년에도 '북쪽 날개'(2위)[14], 후속 싱글 '서던 윈드'(1위)사장 윈도, 
츳파리 노선의 집대성이라고 불린 '십계 (1984)'(1위)까지 연속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 때부터 대중들은 아키나를 당시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었던 마츠다 세이코의 라이벌로서 주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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